뇌동맥류 진단 후 7년: 나의 경험과 조언
20대 시절, 운동을 아주 열심히 했었다.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혈기왕성히 웨이트를 하다 신경계 피로가 누적되어 대학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갔다. 신경과를 가서 뇌혈관 CT를 찍었고, 우연히 뇌동맥류가 발견되어 곧장 신경외과로 인계되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내 뇌혈관에 형성된 꽈리 사진을 보여주시며 여러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셨다.
지금은 그 일이 있은 후로 약 7년의 시간이 흘렀다. 조금은 차분한 마음으로 지난 시간을 뒤돌아볼 수 있게 된 지금, 내가 경험했던 것들과 마음속의 생각들을 공유하려 한다. 이 글이 나와 같은 진단을 받은 다른 환우분들께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 참 큰 행운을 얻으셨어요
어떤 말을 먼저 적어야 할까를 고민했을 때,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제가 그랬던 것처럼 뇌동맥류 진단으로 크나큰 충격을 받으셨을 것이고, 살고 싶은 절박한 마음에 이 글을 검색해 들어오셨을 거예요. '왜 나에게 이런 무서운 결과가 내려진 것일까?' 깊고 깊은 두려움, 하늘에 대한 원망 등... 아주 많은 부정적인 생각과 공포에 휩싸여 계실 테죠.
저는 처음 진단을 받은 후로 약 7년의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조금은 차분한 마음으로 지난 시간을 뒤돌아볼 수 있게 된 지금,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니 동맥류 진단은 정말로 정말로 행운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동맥류 사실을 몰랐다면? 그래서 평소처럼 살다가 한순간에 세상과 이별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재앙이었을 것입니다.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알게 되었기에 저는 살 수 있었습니다.
동맥류 진단으로 많은 걱정이 밀물처럼 몰려들 때면, 언제나 이 말을 기억하세요:
당신은 참 큰 행운을 얻으셨어요.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
- 26살에 혈관 조영제를 주입한 채 뇌 CT를 찍어 뇌동맥류 판정을 받았습니다.
- 정밀검사를 위해 대학병원 수술실에 들어가, 사타구니쪽 동맥을 통해 조영제를 주입해 정밀 촬영을 했습니다. 정밀검사 결과, 당장 조치가 필요할 것 같지 않으며 1년 뒤 추적관찰하자는 담당 선생님의 소견을 받았습니다.
- 1년 뒤, 조영제 없는 뇌 MRI 촬영으로 추적관찰을 했습니다. (동맥류 크기 변화 없음)
- 2년 뒤, 원래 추적관찰을 받아야 했으나 미국 유학으로 인해 받지 못했습니다.
- 추가 2년 뒤, 유학 종료 후 조영제를 주입한 CT촬영을 했습니다. (동맥류 크기 변화 없음)
- 의사 선생님께서 4년 뒤에 추적관찰하자고 하셨습니다.
정밀 검사를 위해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가 가장 두려웠습니다. 촬영이 시작되면 조영제가 3, 4초마다 한 번씩 고함량으로 들어옵니다. 일반 CT촬영 때 조영제가 미지근하게 들어온다면, 정밀 촬영 조영제는 더 많은 용량을 쓰는 건지 아니면 뇌 동맥으로 직접 주입하는 영향인지 모르겠으나, 아주 뜨거운 느낌이 몸을 타고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이때 이후로 조영제 촬영에 대한 공포증이 생긴 것 같습니다.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수면마취 후 진행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추적 관찰을 위해 첫 1년을 기다리는 동안, 공포감이 일상생활을 많이 괴롭혔습니다. 혹시나 동맥류로 인해 쓰러질 것을 대비해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고, 어디를 가나 응급실의 위치부터 파악하고, 계속 머릿속 감각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작은 두통에도 몹시 놀랐습니다. 예민해진 탓인지 실제로 알 수 없는 두통이 자주 발생했고, 불필요한 병원 방문과 응급실 방문을 몇 차례 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죠. 그렇지만 이것도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나아지더라고요. 현재는 그렇게 큰 두려움에 떨며 살지는 않습니다. 이 글을 쓰는 것 또한 그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는 또 하나의 치유 과정일 수도 있겠군요. 혹시나 저처럼 주변 응급실 위치를 알고 계셔야 마음이 놓이시는 분들을 위해 주변 응급실 위치를 알려주는 페이지를 링크해둡니다.
동맥류의 특징
우선, 제 말씀은 어디까지나 제가 의사 선생님께 들은 '저에게만 해당될 수 있는' 말씀을 전달해드리는 것일 뿐, 결코 여러분의 담당 의사의 말씀보다 우선할 수 없음을 명심해주세요.
원인이 명확치 않다
"이게 왜 생긴 거죠?"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았지만 원인은 불명이라고 하셨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혈관에 이러한 기형을 갖고 태어난 경우도 있고, 살면서 자연발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후천적으로 발현되는 유의미한 원인으로 규명된 것은 '흡연' 정도이며, 사실 왜 이것이 발현되는지 아직까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아무 고통이 없다
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동맥류 자체로는 아무런 통증이 없습니다. 따라서 동맥류 환자는 그것이 출혈로 이어지기 전까지는 동맥류로 인한 어떠한 물리적 불편도 느끼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동맥류 판정 환자는 다른 검사 도중 우연히 동맥류를 발견하게 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의사 선생님께 들은 말에 따르면, 동맥류는 실제 모종의 이유로 뇌혈관 촬영을 한 많은 환자들에게서 '적지 않게' 발견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증상이 없어 모르고 살고 있을 뿐 알게 모르게 많은 이들이 갖고 살 수 있는 병일 수 있습니다.
치료
동맥류의 치료는 추적관찰, 코일색전술, 외과적 수술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추적 관찰 : 해당 동맥류가 점점 커지는지, 아니면 그 사이즈 그대로 머물러 있는지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찰합니다. 아무래도 머리 혈관이다 보니,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사는 것이 좋기에 추적관찰 결과에 따라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 경우에는 담당 선생님께서 1년, 2년, 4년, 8년과 같은 주기로 추적관찰을 하고 계십니다.
코일색전술 : 의료기술이 발전하며 두개골을 여는 외과수술 없이 혈관 내로 코일을 집어넣어서 꽈리(동맥류) 속을 채워넣는 시술을 말합니다. 치료 효과가 좋아 코일색전술 치료가 많이 이뤄지는 듯합니다. 성격이 화끈하신 환자들의 경우, 머리 속에 동맥류를 두고 사는 것이 꺼림칙하다며 추적관찰 없이 곧바로 코일색전술을 진행하길 희망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코일색전술이 불가능한 위치에 자리 잡은 동맥류도 존재할 수 있으며, 코일이 꽈리로부터 빠져나와 혈관을 막아버리는 부작용의 위험도 발생할 수 있으니 건드리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동맥류는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동맥류 환우들을 위한 생활 팁
1. 담배 피지 마세요
담배는 동맥류를 악화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가끔 술은 마셔도, 담배만큼은 동맥류 진단 이후로 즉시 끊었습니다.
2. 일상생활 유지하기
의사 선생님께서는 "동맥류로 인해 겁이 나서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평소처럼 생활하셔도 좋으며, 특히 급격히 혈압이 오를까 봐 운동이나 커피 등을 자제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선 환자 개개인의 병세가 다를 수 있으니, 저의 말보단 여러분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을 우선하여 듣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3. 혈관사진 안보기
CT나 MRI 촬영 후, 의사선생님께서 실제 혈관 사진을 보여주시며 이야기하실 때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 혈관 꽈리 사진을 보는 것이 큰 트라우마로 남더라구요. 그 후로 저는 오직 의사 선생님 얼굴만 보며 진찰을 듣습니다.
4. 식이섬유와 혈관 건강
저는 최대한 혈관 건강에 유익한 삶을 살기 위해 저의 생활 습관들을 개선해왔습니다. 대표적인 게 혈당 스파이크를 잡기 위한 노력이었죠. 스파이크를 자주 겪은 혈관은 점점 좁고 약해져 분명 동맥류에 악영향을 끼칠 것 같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저는 식사때마다 가장 먼저 충분히 식이섬유를 섭취함으로써 혈당이 급속도로 오르는 것을 막고자 했습니다. 원래도 제가 고혈압 초기 단계의 높은 혈압을 갖고 있었는데요. 되려 동맥류 진단 이후 열심히 관리하여 정상 혈압을 되찾고 건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미국 유학 생활 중에는 한국에서처럼 충분한 푸성귀를 구하기가 어려워 대신 차전자피를 식전마다 먹었습니다. 자취를 하시거나 저처럼 야채 먹기가 귀한 분들께 추천드려요.
5. 병원과 가까운 2층 이하의 집
이 마지막 조언은 제가 지나치게 꼼꼼한 성격이라 드리는 것일 수 있습니다만, 새로 이사를 계획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고려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뇌출혈이 발생하면 의식을 잃게 되어 가족이나 지인들이 신속히 환자를 응급실로 이송해야 합니다. 이때 골든타임을 놓치면 생존율이 급격히 낮아질 수 있으며, 생존하더라도 심각한 후유증이 남을 수 있습니다.
한림의대 연구팀의 한국심정지 컨소시엄 자료에 따르면, 저층에서 심장마비가 발생한 경우가 고층에 비해 생존율이 2배 높았다고 합니다. 응급의료 접근 시간도 고층의 경우 약 4분이 더 소요되었는데, 이 4분의 차이는 뇌출혈 환자의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뇌출혈이 발생한다면, 병원과 가까운 2층 이하의 집에 거주하는 것이 생존율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부디 우리 모두 혈관 건강하게 무병장수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저와 같은 진단을 받으신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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